|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거란의 침입 |
| 요약 |
거란의 침입
거란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당 말 혼란기에 야율아보기가 부족을 통일하면서 큰 세력을 이루었다. 이후, 거란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배후에 있던 발해를 멸망시켰다. 이후 나라이름을 ‘요’로 바꾸었으며 960년에 송나라와 건국된 후에는 송과 대립관계를 맺었다. 고려는 태조의 훈요 10조에서도 거란을 적대시 하였다. 태조 25년에 거란이 사신과 낙타를 보내오자 사신은 귀양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만부교 사건)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 정종은 30만의 병력으로 편성된 광군을 조직 하였다. 거란은 나라의 안정을 되찾은 후 송을 치기에 앞서 배후를 없애기 위해 고려 침공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993) 거란의 1차 침입은 고려와 송과의 관계를 끊게 하기 위해서 침공한 것이었다. 이때 고려의 서희는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외교담팜을 맺어 고려가 송과의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약속 하였고 압록강 이남에 있던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강동 6주에는 당시에 여진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후 거란은 고려에서 강조가 반란을 일으켜 목종을 제거하고 현종을 왕으로 추대 하였으며 또 거란이 반환을 요구하는 강동 6주를 돌려주지 않자 고려에 대한 2차 침입을 단행하게 되었다. < 강조의 정변 서북면도순검사 강조가 목종의 모후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불륜의 관계를 맺고 위위까지 엿보자 군사를 일으켜 김치양일파를 제거하고 목종을 귀양보냈으며 이어서 현종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 사건으로 거란의 2차 침입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거란의 2차 침입때에는 개경이 함락되었으며 현종은 남쪽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때에 거란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아보자는 의도에서 제작한 것이 초조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현종때 조판하기 시작하여 현종 때에 완성을 보지 못하고 이후 선종 때에 가서 완성되었다. 초조대장경은 이후 몽고의 침입 때에 불타 없어졌으며 이후 고려는 초조대장경을 본떠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게 된다. 2차 침입 때에 양규는 퇴각하는 거란군의 길목을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