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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다루가치 |
| 요약 |
다루가치
어원은 몽고어의 ‘진압하다’ 또는 ‘속박하다’라는 뜻을 지닌 ‘daru’에 명사어미 ‘gha’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chi’를 붙여 ‘진압에 종사하는 사람’, ‘속박하는 사람’의 뜻이 된다. 그것이 다시 총독·지사의 뜻으로 바뀌어 원나라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몽고가 원으로 국명을 바꾸기 전인 태조·태종 때 『흑달사략(黑?事略)』에 쓰여 있는 것과 같이 주로 민정을 관장하는 관청의 책임자에 붙인 관명이었다. 그러다가 세조에 의해 국명이 원으로 바뀌고 행정업무가 세분화되면서 지칭하는 직명도 복잡해졌다.
청나라의 학자 조익(趙翼)이 “다루가치는 관인을 맡아 사무를 처리하는 관청의 장(長)을 총칭하는 것이며, 문관과 무관, 관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는다. 지방행정청인 노(路) 또는 부(府)·주현(州縣)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관명을 지닌 장을 두고 있다.”고 「이십이사차기(二十二史箚記)」에서 몽고의 관명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는 원나라의 다루가치에 대해 잘 설명한 것이다.
『원사(元史)』 백관지에 의하면 중서성(中書省)을 비롯한 고급관청에는 다루가치를 두지 않고, 그 예하관청인 국(局)이나 과(課) 정도의 성격을 지닌 곳에 이를 두었으며, 지방의 행정관청은 위로는 제로총관부(諸路摠管府)에서 아래로는 주현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다루가치를 두고 통치하였다. 또한 제왕(諸王)·부마(駙馬)·공신(功臣)들에게 나누어준 이른바 투하주(投下州)에도 반드시 다루가치를 두었다.
다루가치가 처음으로 고려에 배치된 것은 1231년(고종 18) 살리타(撒禮塔)를 총지휘관으로 하여 고려에 침입한 제1차 몽고침입 때의 일이었다. 몽고군이 개경에 돌입하려는 태세를 갖추고 고려에 권항사(勸降使)를 보내자, 고종은 더 이상 버틸 계책도 세우지 못한 채 그들이 권고한 화평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살리타는 철군의 조건으로 서경을 비롯한 서북면 지방의 14개 요성에 72명의 다루가치를 나누어 배치하였다. 『원사』 고려전에 의하면 다루가치가 분치된 지역은 40여 성으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14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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