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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시대 왜구의 침략 |
| 요약 |
고려시대 왜구의 침략
고려 시대에 왜구가 해안에 침략한 흔적은 기록에 거의 없다. 그러다가 충정왕 2년부터 침입이 본격화 되었다. 왜구의 침입이 가장 극심하였던 시기는 우왕때였으며 우왕이 재위하는 기간동안 무려 378회나 왜구가 침략을 하였다. 이러한 왜구의 침략은 일본 국내 사정에서 비롯하였다. 당시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고 새로우 무로마치 막부가 들어서던 시기여서 정국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또한, 왕실도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싸웠던 관계로 중앙의 통치권이 지방에까지 제대로 미치지 못하였고 백성들의 생활은 곤궁하였다. 그러한 사정은 일본의 서부에 심했는데 일본 서부의 규슈와 그 연안의 쓰시마 섬, 이키 섬 등이 특히 심하였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무력적인 상인 내지는 해적의 무리를 이루어 고려와 중국의 연안을 침탈하게 되었던 것이다. 왜구는 결코 오합지졸이 아니었으며 왜구의 배후에 유력한 지방세력이 있어서 배후조종을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배후조종을 하는 지방세력은 쓰시마 도주와 이키 도주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왜구의 침략으로 고려는 많은 피해를 입었고 특히 연해안 지역의 피해가 심하여 수도를 내륙의 철원으로 옮기자는 주장까지 등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구격퇴를 위한 전투들도 많이 있었는데 왜구격퇴에 활약한 인물들은 이성계, 최영, 정지, 박위등이 있었다. 함경도 변방 출신이었던 이성계는 외적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공을 세우면서 백성들으 신망을 얻게 되었다. 이성계는 왜구를 무찌르는 데에 많은 공을 세웠는데 우왕 6년 해안에서 육지로 상륙하여 노략질하던 왜구는 남원에서 북상하겠다고 호언하였다. 이에 고려 정부는 이성계와 변안열로 하여금 대토벌 작전을 펼치게 하였다. 이전투에서 왜구는 겨우 70여명만이 살아 지리산으로 도망하였는데 이싸움이 황산대첩이었다. 지금 전라북도 남원에는 황산대첩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서 이성계의 공로를 기념하고 있다. 이외에 왜구를 격퇴한 전투로는 화약을 최초로 사용한 진포대첩과 남해안의 관음포에서 이루어졌던 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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