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경주의 불교미술 |
| 요약 |
경주의 불교미술
경주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 본존불은 1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우아하고 근엄한 미소를 잃지 않고 중생들을 굽어보고 있다. 흐르는 듯한 유려한 인체의 조각, 그 사실적 표현, 그리고 주변 자연 환경과의 조화,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는 뛰어난 건축술 등으로 인해 민족 문화 유산의 최대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성덕 대왕 신종의 경우, 그 장중하고 맑은 소리는 당시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의 심금도 울리고 있다. 그런데 천 년이 지나도록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남아서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전해 주는 이러한 문화유산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동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것은 생산을 담당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여 더 많은 생산을 해냈던 민중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민중의 힘에 의한 생산력의 증대 없이 이와 같은 거대한 불사가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당시 신라인들의 창조력과 지혜는 석굴암의 건축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석굴암은 경주 토함산에 있는데, 자연 석굴에 불상을 안치한 것이 아니다. 산 아래에서 거대한 암반을 정확한 규격으로 자른 다음 이것을 석굴이 있는 곳에 끌고 올라와 쌓았다. 더욱 우리들을 경탄케 하는 것은 건축술에서 보여 주는 신라인들의 지혜로움이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은 동해의 바닷물을 들이마셔서 구름과 안개로 토해 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동해로부터 밀려오는 물기 머금은 공기로 인해 습기가 몹시 많은 지역이다. 이러한 습기와 안개 속에서 어떻게 풍화되지 않고 천여 년을 원래의 모습대로 서 있을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뛰어난 과학적 지혜가 담겨 있다. 석굴암 주변을 잘 살펴보면, 석굴암은 그냥 평지에 축조된 것이 아니라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 돌 위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서늘한 샘물이 석굴암 밑으로 흘러 석굴암 내부의 습기가 아래로 모이게 한 것이다. 벽면이나 천장의 건축에서도 얇은 돌을 끼워 맞춤으로써 환기를 용이하게 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과학적인 건축 능력과 지혜가 가난과 배고픔 속에 허덕이고 있는 백성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