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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말의 정치 |
| 요약 |
고려 공민왕 때의 상황
고려는 1270년에 개경으로 환도한 후에 원나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였다. 원 지배기의 첫 왕으로 볼 수 있는 충렬왕은 원의 공주를 왕비로 맞으면서 원나라와의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이후 충선왕은 원나라의 수도인 연경에 만권당을 설립하고 고려와 원의 성리학자들이 서로 교류하게 하였다. <만권당 고려의 충선왕이 원의 수도 연경에 세운 학술연구기관이다. 충선왕은 개혁정치를 펴려다 실패하고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주고 1313년 연경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영주할 계획을 세웠다. 충선왕은 연경에 만권당을 짓고, 성리학에 대한 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조맹부, 원명선, 장양호등과 경사를 연구하는 한편, 이제현,박충좌 등을 불러 서로 토론하게 하였다. 만권당은 고려의 성리학 발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가 있다.>
25대 충렬왕때에 시작된 원나라의 지배는 30대 충정왕때에 까지 계속 되었다. 충으로 시작되는 원나라 지배기의 왕명은 충정왕에서 끝나게 되고 뒤이어 31대 공민왕이 즉위하면서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민왕이 먼저 시행한 작업은 기철등의 친원파를 숙청하는 일이었다. 기철은 자기의 여동생이 원나라의 황후가 된 것을 바탕으로 해서 고려정치권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어서 공민왕은 원나라가 설치했던 정동행성을 폐지했으며 이어서 함경도 화주에 설치했던 쌍성총관부를 철폐 하였다. 하지만 공민왕때 수복한 쌍성총관부는 이후 명나라가 이곳을 점령하려고 하자 명나라를 침략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공민왕은 정치적인 해결 외에도 민생안정을 위한 여러 정책을 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한 것이었다. 신돈이 개혁의 주축을 이루면서 권문세족의 재산을 환수하는데에 주안점을 두면서 실시한 개혁의 내용에는 토지제도에 대한 개혁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민왕은 원나라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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