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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의 매사냥 |
| 요약 |
고려의 매사냥
왕건의 고려 건국 배경에 매사냥이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매사냥에 나섰던 호경(虎景)이 밤을 새우다가 범을 만났고, 이를 계기로 산신(山神)이 되었으며, 부인과 교합하여 아들 강충(康忠)을 낳았고, 그 후손이 삼국을 통일한 왕건이라는 것이다. 매사냥에 관한 첫 기사는 고종 14년(1227)조(12월)에 보인다. 어사대에서, 마을에서 비둘기와 매 기르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내용이다. 관리들은 공무를 돌보지 않고 (매사냥을 즐기고), 일반 백성은 매로 쟁송을 일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관료와 백성들의 매사냥 열풍이 얼마나 거세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 대목이다. 임금의 매를 돌보고 매사냥을 주관하는 관청인 응방(鷹坊)에 딸린 사람들의 횡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충렬왕 2년(1276) 3월, 중랑장 원경(元卿) 등을 각 도로 보내서 바로 잡는 한편 죄를 물었다는 기사가 좋은 보기이다. 왕실의 매사냥 기사는 충렬왕(1274~1308) 대에 이르러 부쩍 늘어난다. 그는 재위 24년 동안 무려 55번이나 사냥에 나섰으며, 구경한 것도 다섯 번이나 된다. 한 해 두 번 이상 즐긴 셈이다. 그의 재위 기간에 호랑이가 성과 궁궐에 나타난 것은 13회이다. 그는 2년(1276) 8월 덕수현과 마제산에서 매사냥을 할 때, “홀치[忽赤]와 응방을 거느리고 친히 활과 화살, 매와 새매를 다루며 종횡으로 달려서 부로(父老)들을 모두 탄복시키는” 재간을 보였다. 또 그만큼 매사냥을 즐겼다. ‘홀치’는 수알치를 가리키는 몽골말이다. 우리말 ‘수알치’도 이에서 왔을 것이다. 응방은 매를 돌보고 임금의 매사냥을 주관하는 관청이다. 그는 매잡이 벼슬인 착응별감(捉鷹別監)을 여러 사람에게 주고, 전국 각지의 매를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성격 또한 별나서 산 고니와 따오기의 배와 등의 털을 뽑은 다음 놓아주고 나서, 매가 달려들어 뜯어먹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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