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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권문세족 |
| 요약 |
권문세족 원이 쇠퇴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공민왕(恭愍王) 은 기황후(奇皇后) 일족을 비롯한 부원세력을 제거하고, 정동행성 이문소(理問所)를 혁파하는 한편 군대를 동원하여 쌍성총관부를 공격하며, 관제를 복구하는 등 반원정책(反元政策)을 수행하였다. 또한 신돈(辛旽)을 등용하고 전민변정사업을 전개하여 사회모순을 척결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추진세력의 미약함과 권문세족의 반대, 계속된 왜적과 홍건적의 침입으로 인한 사회경제기반의 파괴로 개혁은 성공하지 못하고, 공민왕(恭愍王) 마저 살해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집요하게 사회 모순의 개혁을 요구하는 신진사대부와 반원전쟁과 왜구, 홍건적과의 전쟁을 통해 성장한 무장이 정치세력으로 결집하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공민왕(恭愍王) 이후 다시 권력을 장악한 권문세족은 사회경제적 모순의 해결에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여 개혁세력과 보수세력간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1388년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장악하므로써 대세는 개혁파에게 돌아갔다. 이성계(李成桂)는 공양왕(恭讓王)을 세우고, 사회모순의 척결을 꾸준히 주장해 온 정도전(鄭道傳) 조준 등 신흥사대부들과 연결하여 과전법(科田法)을 제정하므로써 사전의 폐단을 극복하는 동시에 새로운 국가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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