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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조선후기 대외관계의 변화 |
| 요약 |
조선후기 대외관계의 변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그친 후 조선사회의 변화와 함께 대외관계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에서는 왕조가 바뀌어 명에서 청으로의 왕조의 교체가 있었으며 일본에서도 에도막부가 성립되어서 나름대로의 국내적인 변화를 겪는 상황에 있었다. 조선후기에 청과 일본과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면서 동아시아 정세도 변화의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청과의 관계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에 대하여 표면상 사대 관계를 맺고 사신이 왕래하면서 교역하였다. 하지만 청에 대한 적개심을 바탕으로 하여 북벌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효종과 서인세력은 명과의 대의 명분을 내세우면서 청나라를 치려는 불벌계획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숙종 때에도 청의 정세 변화를 이용하여 윤휴를 중심으로 북벌 움직임이 제기되었으나, 실천에 옮기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또 북벌을 실천에 옮기기 어려웠던 대표적인 이유가 청나라의 세력이 날로 확장된다는 것이었다. 청은 중국 대륙을 장악한 뒤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고, 중국의 전통문화를 보호, 장려하고 서양의 문물까지 받아들여 문화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조선사신은 귀국후에 기행문이나 보고서를 통하여 변화하는 청의 사정을 전하였고,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였다. 이후 청의 문화를 도입하자는 북학파 까지 등장을 하였다. 북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등을 들수가 있었다. 청은 중국 대륙을 차지한 후에도 자기들의 본거지였던 만주지방을 계속 중요시 하게 되면서 조선과 영토적인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영토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이 백두산 정계비를 건립한 것이었다. 조선과 청 두 나라의 대표는 백두산 일대를 답사하고 국경을 확정하여 1712년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이 백두산 정계비 에서 양국 간의 국경은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고 하였다. 이후 이 비석은 일제침략기에 간도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일본과의 관계 임진왜란직후 조선은 일본과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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