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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40백제의 정복군주 근초고왕[1] |
| 요약 |
백제의 정복군주 근초고왕
백제의 근초고왕이 정복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로 생각했던 나라는 고구려 였다. 근초고왕은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신라와의 동맹 관계를 강화했고, 중국의 동진과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동진과 직접 교류할 수 있게 되면서 백제는 대륙의 선진 문물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백제의 문화가 발전하는데 많은 보탬을 주는 것이었다. 근초고왕은 백제 역사상 최초로 중국 사서에 이름이 등장하는 왕으로서, 372년에는 동진으로부터 ‘진동 장군 영낙랑 태수’에 책봉되기도 했다. 중국 북방의 정통 왕조임을 내세우는 동진으로부터 근초고왕이 작호를 받은 것은 백제가 북쪽으로 팽창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 주고 있는데 , 고구려가 낙랑군을 멸망시킬 때 발생한 유민들을 회유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동진은 낙랑지역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고구려에 흡수된 낙랑의 유민들은 훗날 백제가 대외 활동의 폭을 넓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근초고왕 때에는 일본과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했다. 일본과의 교류가 증가할수록 일본으로 건너가는 백제인 들의 수도 증가했고, 백제 조정은 일본으로 진출한 백제계통의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백제와 일본이 정확히 언제부터 교류를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늦어도 근초고왕 대에는 교류를 시작했다고 볼 수가 있다. 남아있는 사료를 살펴보면, 백제는 주로 문화와 기술을 일본에 전수해 주었던 반면, 일본은 백제가 요청할 때마다 군사들을 보내주었다. 근초고왕 때에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이 일본에 와서 학문과 문화를 전파했다는 기록이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전해지고 있다. 아직기는 말을 길들이는 기술자로 일본에 갔다가 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왕인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해주었다. 근초고왕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바로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죽이고 황해도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 했다는 것이다. 근초고왕의 북진 정책은 당시 남진 정책을 추구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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