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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북벌정책 |
| 요약 |
북벌정책
<<효종은 조정에서 김자점 등 친청세력들을 몰아내고 김상헌, 김집, 송시열 등 반청 척화파 인물들을 대거 등용한 데 이어 대대적인 군비증강을 추진했다. 북벌의 핵심사업인 군비증강은 인조 때 이미 북벌을 목적으로 설치된 어영청을 근간으로 하여 전 군영에 걸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영청은 현재 병사 수가 이전보다 3배가 넘는 2만 1천여명으로 늘어 수도 방위사령부인 훈련도감에 필적하는 중앙의 핵심군영이 됐고 국왕의 친위병인 금군은 기병대로 개편되는 한편 훈련도감과 남한산성 수비대인 수어청에 대해서도 병력과 군비증강의 방향으로 개혁이 추진되고 있었다. 특히 유사시에 대비해 남한산성에 대포 3백 문을 설치하고 강화에 임시궁궐인 행궁을 수축하였다. 아울러 북벌에 나서기 위해서는 상당량이 군량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특별조치를 강구했다. 그동안 극심한 흉년이 계속되자 임시변통으로 비축해둔 군량을 상당량 대출해주었는데 수어청의 경우 이를 회수하기 위해서 2만 석에 달하는 이자곡을 받지 않고 원곡만을 징수하는 특별조치를 취해 군량미를 회수하기도 했다. 또 유사시에 대비해 남한산성에 군량미를 비축하는 등 군량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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