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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조선건국준비 과정 |
| 요약 |
조선건국준비 과정
14세기 후반 고려는 친원파 권문세족이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여 국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해안 지대에서는 왜구의 침략이 끊이지 않아 국토가 황폐화되고 민생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최영과 이성계가 출현하여 이인임 일파를 몰아내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우왕 즉위 후 고려는 명과 북원과의 양면 외교를 시행하였다. 이러한 고려의 양명외교에 대해서 명은 고려의 북원과의 통교를 비난하면서, 쌍성총관부의 반환을 요구 하였다. 우왕과 최영은 명의 요구를 거절함과 동시에 요동 지방 회복을 시도하였다. 이성계와 조민수를 책임자로 하여 요동정벌을 떠나게 되었지만 이성계는 다음과 같은 4대 불가론을 내세우면서 요동 정벌을 반대하였다. 첫째, 소국이 대국을 치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 여름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농사에 지장을 초래하니 불가하다. 셋째, 원정을 틈타 왜적이 침입할 우려가 있으니 불가하다. 넷째, 장마로 인해 활에 먹인 아교가 풀릴 염려가 있고, 군사들이 병에 걸릴 우려가 있으니 불가하다. 요동정벌을 떠났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후 우왕과 최영을 제거하면서 조선건국 준비작업이 시작이 되었다. 신흥무인 세력인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는 위화도 회군으로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곧이어 고려 말 문란한 토지제도와 조세제도를 발 잡는 등 민생 안정을 위한 시책을 마련하는 작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조선건국 1년전인 1391년에 과전법을 제정하였는데 과전법은 정도전, 조준들의 신진사대부들이 주도한 전제 개혁으로, 토지 재분배를 통한 신진 관료의 경제적 기반을 보장하고 10분의 1의 공조율 실시, 경작권의 보장, 국가 지급 토지의 매매 금지 등 농민 생활의 안정과 국가 재정을 확보하고자 시행하였다. 조선왕조는 유교 이념을 국가 이데올로기이자 사실상 국교로 삼아 세워진 나라로, 유교 이념을 도시 구조와 주요 명칭에 반영하였다. 한양은 백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까지 네 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이다. 도읍지인 한양을 건설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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