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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선조 때의 당쟁 |
| 요약 |
선조 때의 당쟁
명종의 처남인 심의겸은 명문가 출신으로 남자답고 기개가 있었으며, 몸가짐을 조심하면서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그는 주위 사람들을 돌보아 주어 사림의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윤원형이 외척으로서 권세를 휘두르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김효원은 심의겸과는 달리 시골 출신으로 용모가 단정하고 엄숙하면서도 행동이 바른 선비였다. 김효원은 33세 되던 해인 1565년에 장원급제를 했고, 그 후 사림출신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이조 전랑자리에 추천되었는데 예전에 윤원형의 집에 드나들던 일을 이유로 심의겸이 반대했다. 이 무렵 어린 선조가 왕위에 올라 심의겸의 누이인 인순왕후가 정치를 돕고 있었다. 이렇게 김효원은 6년쯤 출세 길이 막혀 있다가 마침내 이조 전랑이 되었다. 이 때 심의겸은 그의 상관으로 이조 참의 자리에 있었는데 김효원은 그를 외척의 힘으로 출세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 아니라 심의겸을 하찮게 평했다. 그리고 1574년에 심의겸의 동생인 심충겸이 낭관 추천을 받자 선배로서 이를 반대했다. 이 일을 두고 옳고 그름을 가리느라 여론이 들끓었고 사림들은 편을 지어 다투었다. 김효원과 심의겸은 뛰어난 자질과 학문을 지니고 있어 사림으로 명망을 얻고 있었지만 서로를 비난하면서 파당을 짓기 시작했다. 여론은 심의겸이 도성 서쪽인 창의동에 산다고 해서 심의겸을 편드는 사람을 서인이라 하였고 김효원이 도성 동쪽인 낙봉에 산다고 해서 그를 따르는 사람을 동인이라 불렀다. 이제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이 아니라 동인과 서인의 갈등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김효원을 주축으로 하는 동인계열은 오건, 김성일, 유성룡, 김우옹, 정인홍 등 이황과 조식의 제자로 영남 출신의 신진사림이자 대부분 김효원과 함께 글을 배운 선비들이었다. 서인 계열은 박순, 윤두수, 정철등 기호지방 출신의 기성 사림으로 심의겸과 가깝게 지내는 인사들이었다. 두 당파는 모든 나라 일에 편을 갈라 논란을 벌일줄만 알았지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이러한 상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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