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조선전기의 무속 |
| 요약 |
조선전기의 무속
조선시대에 기우제는 무당과 박수가 진행했는데 서울의 경우 몇십 명에서 때로는 몇백 명까지 동원되기도 했으며, 지방이나 신당에 무당과 박수를 보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무당과 박수는 무속 의식을 마음껏 드러내며 행사를 이끌었고 기원대로 비가 내리면 큰 상을 받았다. 태조는 개성의 동쪽과 서쪽에 동서 대비원을 설치하고 무당을 두어 의원과 함께 질병을 다스리게 했다. 뒤를 이은 태종도 무당의 질병 치료를 인정해 대비원을 개편한 활인원에 무당을 소속시켰다. 무속인은 여자 무당과 남자박수로 나누어지는데 중심 역할은 무당이 맡고, 박수는 보조 역할을 했다. 남성이 여성 밑에서 일한다는 것은 조선과 같은 유교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였다. 무속행위는 기우제에서 비가 내리기를 비는 일, 신당에서 임금이 오래 살기를 비는일, 개인의 질병이나 재앙을 물리치는 일말고도 살풀이부터 앞일을 점치거나 미리 막는 일까지 포함되는데, 무당은 굿과 풀이를 통해서 신사를 벌이곤 했다. 굿은 재앙을 물리치는 행위이며 풀이는 실의 매듭을 풀듯이 죄나 원한을 풀어 복을 비는 것에서 유래했다. 굿판이나 풀이 판이 벌어지면 술과 과일, 음식이 풍성하게 파려진다. 무당이 사용하는 기본 도구는 울긋불긋한 색깔의 길고 넓은 무복과 고령, 부채, 작두 등이다. 무당은 적절한 대목에서 노래를 부르고 주문도 외우는데 굿의 절정은 물이 가득 담긴 물동이 위에 날카로운 칼을 올려 놓은 뒤 무당이 맨발로 올라가 춤을 추는 때인데, 이 장면을 보면 누구나 크게 감탄했다. 민간에서는 성주풀이, 낙성굿, 칠성풀이, 조상굿, 삼신굿, 서낭제, 당산굿 등이 널리 행해졌고 별신굿, 액막이굿, 용신굿 등도 자주 벌였는데 이 가운데서 서낭당 제사가 가장 성대하고 야단스러웠다. 서낭당은 본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산마루나 고개에 돌을 쌓아 놓은 데서 유래했다. 고대 사회에서는 적이 쳐들어오면 공격하려고 돌을 모아 놓았다고도 한다. 사람들은 오가며 돌을 1개씩 올려 놓으며 절을 했다. 혹은 실과 종이를 놓기도 했고 옆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