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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경덕왕,혜공왕때의 귀족반란 |
| 요약 |
경덕왕, 혜공왕 때의 귀족반란
756년 통일신라의 경덕왕은 70년 동안 벼슬아치들에게 연봉이나 월봉으로 주던 것을 예전처럼 다시 녹읍으로 주는 녹읍제를 부활시켰다. 이것은 귀족들이 녹읍제를 꾸준하게 요구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녹읍제의 부활은 귀족들의 권한을 증대 시켜서 뒤이어 오는 귀족반란의 불씨가 되게 되었다. 녹읍제로 돌아가면 경제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지방에서 자신이 세력을 키울수 도 있었으므로 귀족들은 왕실이 혼란해지고 약해진 틈을 타서 거세게 압력을 넣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덕왕은 왕위에 있던 24년 동안 여러모로 소심 초사한 탓인지 죽음을 앞두고 허깨비를 보는 등 정신 착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경덕왕은 충담사를 왕사로 삼아서 국정을 보좌하게 하기도 하였다. 충담사는 이때 안민가를 지었는데 안민가의 내용을 보면 <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는 어미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하시면 백성이 사랑하리라. 탄식하는 ant 창생, 이들을 먹이도록 다스릴지어다. 이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리 하시면 나라가 지탱하리라.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하면 나라가 태평하리라 > 경덕왕은 이 안민가에 아주 만족하였다고 한다. 경덕왕이 죽고 혜공왕이 즉위 하였는데 그때의 나이가 불과 8세였다. 혜공왕 당시에 여러 가지의 불길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3자나 되는 붉은 유성이 떨어지고 여름에 우박이 내리는 등 온갖 재앙과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이라고 수군 거렸다. 혜공왕 4년에 일길찬 김대공과 그의 아우인 아찬 김대렴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들은 왕궁을 포위하고 33일동안 압박을 가했다. 이 때에 왕경과 각 고을에서도 96각간이 왕궁파와 김대공파로 갈라져 서로 군사를 이끌고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경주는 물론 온나라가 요동을 쳤다. 결국 왕궁파에 밀린 김대공과 김대렴은 물론 그들의 피붙이는 모두 죽음을 당했다. 또 2년 뒤에는 대아찬 김융이 그로부터 5년 뒤에는 이찬 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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