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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거란과 서하의 침입 |
| 요약 |
거란과 서하의 침입
[당의 멸망과 요의 성립] 당 제국이 무너지자 그 영향 아래 있던 주변 민족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들은 5대의 혼란기를 틈타 민족적 단합을 이루고 송나라에 압력을 가해 왔는데, 그 선두 주자가 거란족이었다. 거란족은 몽골 동부에 살던 유목민이었는데, 그들의 추장이던 야율아보기가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916년에 강력한 거란 왕국을 세웠다. 그 후 거란족은 만주의 발해를 멸망시키고, 5대의 중국에 침입하여 화베이(화북) 지방의 일부를 빼앗은 뒤 국호를 요(遼)로 고쳤다. 거란족은 몽골·만주와 중국의 일부를 지배하는 대제국을 이룩하고, 다시 중원으로의 진출을 꾀하였다.
[송나라와 요의 관계] 당시 중국의 송나라는 고려와 동맹을 맺어 요에 대항하려 했으므로, 요나라는 우선 고려를 압박하여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게 하였다. 요나라는 송나라에 침입하였고, 이에 송나라는 해마다 많은 은과 비단을 요나라에 보내는 조건으로 화친을 맺었다. 군사력이 약했던 송나라로서는 막강한 거란족을 물리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굴욕적인 화평 조약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요나라는 송나라와 평화 관계를 유지하면서 번영을 누렸는데, 한때는 중앙아시아 지방까지도 그 세력하에 두었다. 요나라는 중국 문화를 받아들였으나, 거란 문자를 만들어 쓰는 등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는 데도 힘썼다. 또한 불교를 숭상하여 많은 절과 탑도 세웠다.
[서하의 침입] 중국 서북부에 살던 티베트 계통의 탕구트 족도 독립하여 서하(1038~1227년)를 세웠다. 서하를 건국한 이원호는 스스로 황제라 일컫고 통치 제도를 갖추는 한편, 독자적인 문자도 만들었다. 서하는 동서 교통의 요지를 장악하여 강대해졌으며, 요나라와 손잡고 중국을 자주 침범하였다. 그리하여 송나라는 평화 유지를 위해 서하에 대해서도 해마다 많은 비단·은·차 등을 보내야 했다.
[거란족] 5세기 중엽부터 내몽골의 시라무렌 강 유역에 살고 있던 유목 민족으로, 10세기 초에 야율아보기가 여러 부족 집단을 통일하여 거란 왕국을 세운 뒤 국호를 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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