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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남한산성 탐구 |
| 요약 |
남한산성 탐구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성의 종류와 크고 작은 성이 1,700개나 되는데 남한산성보다 더 긴 성은 있지만, 온전히 성의 모습이 남아있는 것은 아시아 지역에서 만리장성 다음이라고 볼 수 있다. 밖으로 나가보면 약 380년 전에 어떻게 그렇게 튼튼하고 아름답게 성을 쌓았을까 생각해 본다.
남한산성은 국가사적 57호이고 원성과 치성, 외성을 합쳐 11,76km이다. 하지만 토지공사에서 다시 측정해본 결과 12,355km라고 한다. 남한이라는 개념은 진산과 성산으로 인체에 비유하면 배꼽에 해당하는 아주 귀중한 곳이다.
예부터 한강을 지배하는 나라가 패권을 쥐었다. 처음에는 백제, 다음은 고구려를 이어 신라가 지배했다. 남한산성이 있는 광주는 고려시대에는 관내도, 나중에는 양광도, 경기좌도, 우도로 나뉘고 경기좌도에 속했던 곳(후에 경기도가 됨)으로 2, 3개면에 달하는 아주 큰 고을이어서 다른 지역은 몰라도 광주유수는 정이품벼슬로 지금의 국방부장관 정도의 직급이었다.
이곳은 백제의 역사와 조선의 역사가 함께 숨 쉬고 있는 곳으로 백제 때(B.C 11년 2월)는 7월에 말갈의 침입을 받아 남한산성으로 피난온 후 B.C 6년 7월에 옮겼다고 한다.
또한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석축 성으로 밝혀지며 낮이 길다하여 일장성 또는 주장성으로 불렀으며, 성의 주변부가 험준하며 수비하기가 뛰어나고 성의 중심부는 평지로 되어 있어 주거하기 또한 용이하여 산성으로서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
조선 14대임금 선조때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그에 이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서산대사도 와서 보고 서애 유성룡도 성의 수축을 주장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광해 13년에 경도(제2의 왕도), 보장지로 지정하고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 석성을 개축을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성의 모습은 이괄(조선 인조 때 반정에 참여한 인물)이 공신 책정에 반감을 품고 난을 일으켰는데 임금은 공산성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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