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1930년 이후의 독립운동 |
| 요약 |
1930년 이후의 독립운동
1931년 일제는 만주를 점령하고 이듬해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다. 이 때문에 만주에서 독립군의 활동을 더욱 어려워졌다. 일제의 만주 침략에 맞서 항일 중국 의용군이 만들어지자, 독립군은 이들과 손잡고 한,중 연합군을 만들어 독립전쟁을 계속하였다.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은 남만주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파 하였는데 이것이 영릉가 전투이다. 또 다음해에는 일본군과 만주군의 연합군에 맞서 흥경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하지만 1934년 9월 양세봉이 일제에 의해 살해당한 뒤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지청천이 이끄는 북만주의 한국 독립군도 중국군과 연합하여 1932년 쌍성보 전투, 이듬해 개전자령 전투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커다란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일제의 공격이 거세지자 만주지역의 군대를 해산하고 중국 관내로 이동하였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한 다음 중국 내이 독립 운동 단체들 사이에서는 하나로 힘을 합쳐 싸우기 위한 통합운동이 활기를 띄었다. 1935년 조선의열단,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등 여러 단체들이 뭉쳐 민족 혁명당을 세웠다. 이후 어느 정도의 분열도 있었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통합에 찬성하는 단체들과 연합하여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하고 이듬해 군사조직인 조선 의용대를 만들었다. 조선의용대는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주로 정보수집과 포로 신문, 후방 교란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소극적인 활동에 불만을 품은 조선의용대원의 일부는 1941년 무렵 중국 공산당이 해방구가 있던 화복지방으로 옮겨갔다. 북상한 조건 의용대원들은 조선의용대 화복지대에 편성이 되었다. 조선의용대 화북 지대는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호가장 전투, 1942년 반소탕전 등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한편 화북 에서는 최창익, 허정숙 등이 중국 공산당의 조선인 간부인 무정과 함께 해로운 항일 민족 통일 전선체의 결성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북상해온 조선 의용대원들과 함께 1941년 화복 조선 청년연합회를 결성하였다. 화북 조선 청년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