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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 |
| 요약 |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
[삼부회의 재개와 국민 의회의 성립] 부르봉 왕조의 절대 군주 루이 14세는 호화로운 생활과 무모한 전쟁으로 재정을 궁핍하게 만들었다. 뒤를 이은 루이 16세는 국가의 재정을 바로잡아 보려고 경제학자 튀르고 등을 재무 장관으로 등용하여 재정 개혁을 시도했으나, 귀족들의 반대로 모두 실패하였다. 이에 최후의 방법으로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삼부회를 소집하여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1789년에 베르사유 궁전에서 삼부회가 열렸다. 그런데 회의가 열리자 곧 표결 방법을 놓고 의견이 맞섰다. 특권층은 제1·제2·제3신분을 각각 한 표로 하는 신분별 의결을 주장한 데 비해 평민층은 사람 수에 따른 다수결을 주장하였다.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자 평민들은 따로 모임을 가지고 자기들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의 대표라는 뜻에서 국민 의회를 만들었다.
[시민들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 루이 16세가 평민층의 모임을 무력으로 해산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파리 시민들은 무기를 들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바스티유 감옥은 정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두어 두던 곳으로 전제 정치의 상징처럼 되어 있었다. 파리 시민들은 감옥을 파괴하고 정치범들을 풀어 주었는데, 이것이 혁명의 첫 불길이 되었다. 이 무렵 혁명을 지지하는 파리 시민들은 모자에 적·백·청색의 띠를 두르고 다녔는데, 이것이 후에 프랑스 국기인 3색기가 되었다.
[3색기] 프랑스 혁명 이후의 프랑스 국기로 파리 시의 군대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빨간색, 부르봉 왕조를 상징하는 흰색으로 만들졌다. 3색은 자유·평등·박애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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