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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백 년 전쟁과 장미 전쟁 |
| 요약 |
백 년 전쟁과 장미 전쟁
[백 년 전쟁과 중앙 집권의 강화] 1328년 프랑스의 카페 왕조가 무너지자, 발루아 왕가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올라 새 왕조를 열었다. 이때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어머니가 카페 왕조 출신이라는 구실을 들어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왕 필리프 6세는 프랑스 안에 있는 영국 영토를 프랑스 영토로 몰수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에 영국 왕이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에 침입하여 백 년 전쟁(1337~1453년)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처음에는 영국군이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어 프랑스 국토의 반 이상을 점령하였다. 프랑스는 수도인 파리도 영국 군에게 빼앗기고 최후의 근거지였던 오를레앙마저 포위당하여 멸망 직전의 위기를 맞았다. 이때 잔 다르크라는 16세 소녀가 프랑스 군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용감히 싸워 오를레앙을 포위한 영국 군을 무찔렀다. 잔 다르크는 뒤에 영국군에게 사로잡혀 화형에 처해졌지만, 프랑스 인들의 민족적인 자각심을 높이게 되어 마침내 영국군을 프랑스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이 전쟁으로 프랑스의 많은 제후와 기사가 전사하거나 재산을 잃고 몰락하였다. 따라서 왕권이 강화되어 중앙 집권이 쉽게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장미 전쟁] 영국에서는 백 년 전쟁에 실패한 후 제후들 사이에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장미 전쟁(1455~1485년)이 일어났다. 장미 전쟁은 랭커스터 집안과 요크 집안 사이의 싸움인데, 두 집안이 각각 흰 장미와 붉은 장미를 집안 표시로 삼은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 전쟁은 헨리 7세가 요크 집안의 공주와 결혼하여 왕위에 올라 튜더 왕조를 엶으로써 끝이 났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영국의 많은 봉건 귀족이 몰락하였다.
[크레시 전투] 백 년 전쟁 중에 영국군이 프랑스 군을 물리친 싸움이다. 에드워드 3세와 그의 아들 에드워드 흑태자(흑색 갑옷을 입은 데서 이름 붙여짐)가 지휘하는 영국군은 크레시 언덕에서 필리프 6세의 프랑스 군대를 무찔렀다. 이 전쟁의 결과 백 년 전쟁 초기의 영국군의 우위가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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