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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조선후기 신분제의 동요 |
| 요약 |
조선후기 신분제의 동요
조선후기에 와서는 향촌사회의 신분제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신분제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인들이 신분 상승을 하는 추세가 특징적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 상호간에 일어난 정치적 갈등으로 어느 한 붕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일당 전제화가 전개되었다. 권력을 독점한 붕당은 서인이었다. 권력을 잡은 일부 양반을 제외하고 다수의 양반은 이 과정에서 몰락하였다. 정권에서 밀려난 양반은 관직에 등용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향촌 사회에서 겨우 위세를 유지하는 향반이 되거나 더욱 몰락한 양반이 되기도 하였다. 향촌 사회에서도 사회 경제적 변화로 신분 변동이 활발하였다. 양반의 수는 더욱 늘어나고, 상민과 노비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는 부를 축적한 농민이 지위를 높이거나 역의 부담을 모면하려고 양반 신분을 사거나 족보를 위조하여 양반으로 행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사회 변동이 심화되는 가운데 서얼과 중인 등 중간계층의 역할도 커졌다. 서얼에 대한 차별은 임진왜란 이후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전란으로 재정적 타격을 받은 정부가 납속책을 실시하고 공명첩을 발급하자, 서얼은 이를 이용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영조와 정조 때에 서얼을 어느 정도 등용하자 서얼들은 활발하게 관직에 진출하여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정조 때에는 실학자들 중에서 서얼들이 많았으며 규장각에도 서얼들이 많이 활약을 하게 되었다.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출신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제각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서얼의 신분 상승 운동은 기술직에 종사하고 있던 중인들에게도 많은 자극을 주었다. 중인들은 기술직에 종사하며 축적한 재산과 탄탄한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추구하였다. 중인 중에서도 역관들은 청과의 외교 업무에 종사하면서 서학을 비롯한 외래 문화 수용에 있어서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성리학적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회의 수립을 추구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노비계층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노비들은 군공과 납속 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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