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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역사신문(무신정권) |
| 요약 |
고려역사신문(무신정권) 2011-9-30
무신들은 왜 정변을 일으켰나 무신정변은 표면적으로는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대장군인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운 일이나, 젊은 문신 한뢰가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사실 무신정변의 배경에는 무신을 경시하고 문신을 우대하는 고려의 문신 위주의 정책이 있었다. 고려 때 무신은 문신과 더불어 지배층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무신은 문신에 비해 여러 가지로 차병 대우를 받았다. 무신은 정3품 상장군까지만 오를 수 있었고, 정2품 이상의 재상은 될 수 없었다. 군사행정을 담당하는 병부의 판서나 상서는 모두 문신이 차지하였다. 개다가 의종은 개혁 정치로 이를 해결하려 하였지만 문신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또 무신정변이 일어난 배경으로 하충 군인들의 불만을 들수 있다. 군인들은 유사시에는 전쟁에 동원되었으며, 평소에도 각종 잡역에 동원되었다. 하지만 낮은 대우에 군인전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불만이 쌓여 갔다. 이 때문에 군인들은 무신정변에 적극 협조하였다. 무신정변은 의종 24년 8월, 왕이 보현원에 행차한 것을 기회로 무신들이 문신들을 몰살하면서 시작되었다. 대장군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이 순검군을 모아 문신과 문신들을 따르는 신하, 군사들을 살해 하였다. 무신정권의 권력기구 무신정권 초기의 대표적인 권력기구는 중방이었다. 이후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교정도감을 설치하였는데 교정도감은 무신집권기 최고의 권력기관이라고 할 수가 있다. 희종 5년인 1209년 4월에 최충헌 부자를 살해 하기로 모의한 청교역 역리와 승도 등을 수색,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임시 기구였다. 그러나 그후 최총헌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기구로서 뿐만 아니라 사무를 관장하고 국정을 총괄하는 중심 기관이 되었다. 그 밖에 비위에 대한 규찰과 공물과 특별세 등 인사 행정과 세무 행정도 담당하였다. 무신정권기의 권력기구였던 정방은 최씨 무신 집권기에 최우가 인사의 권리를 위해 그의 사저에 설치한 기관이다. 본래 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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