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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화성 |
| 요약 |
화성
화성은 조선 정조의 명으로 경기도 수원에 조성한 신도시의 이름이자 그 도시 외곽을 감싸는 성곽의 호칭이기도 하다.
[건설 배경]
1. 왕권 강화 사도세자의 죽음과 당쟁의 심화 등으로 정국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즉위한 정조는 왕권 강화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삼았다. 우선 규장각을 세워 신진 학자를 중용하고 국왕 직속의 친위 부대를 만들어 왕권 강화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왕권을 지원하는 배후 도시를 마련하기 위하여 지리적 요충지인 수원에 상업이 활성화된 신도시를 인위적으로 조성하고자 하였다.
2.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 이전 영조에 의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풍수지리학상 명당 자리였던 화산으로 이전하고 그 부근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성하였다.
3. 전쟁 방어기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남쪽 방어기지의 필요이 부각되었다. 이에 남쪽 방어기지의 역할을 하고 강력한 왕권을 실현하고자 계획적으로 건설하였다.
[건설 과정]
1. 설계 화성의 설계는 다산 정약용이 맡았고, 건설 공사는 영의정을 지냈던 채제공의 총괄 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진행되었다.
2. 과학 기술 이용 화성 건설에는 전통적 지식과 외래 지식까지 당시의 지적 성과와 과학 기술이 집약되었다. 특히 무거운 돌을 다루어야 하는 성곽 건설 공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거중기 같은 기계를 고안하여 사용함으로써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였다.
3. 기간 당초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았던 공사는 그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34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1794년 1월에 시작된 건설 공사는 1796년 10월에 완성되어 낙성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구조]
1. 건설된 성곽의 규모는 총 길이 5,52m, 전체 면적은 207,900㎡에 이른다.
2. 지세와 지형을 살펴 도로와 수로를 건설하고 동서남북에 각각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의 성문을 건설하였으며, 북수문과 남수문을 두어 내부 공간의 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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