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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천주교의 박해 |
| 요약 |
[천주교의 박해]
1. 박해 원인 천주교는 제사를 우상 숭배로 여겨 유교 제사의 의식을 거부하였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죽은 뒤에 또다른 세상이 있다고 가르쳤다. 지배 계층은 이를 성리학적 사회 질서와 국가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했다.
2. 박해 과정 (1) 1786년 제사 지내는 문제로 정약용의 외사촌 유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당하였다. (2) 1801년 신유박해 때 오가작통법(다섯 집을 하나로 묶어 서로 감시하도록 한 제도)을 써서 교인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300여 명의 교인과 주문모 신부를 한강 새남터에서 처형하였다. (3) 1839년 기해 박해가 일어나 정하상(정약종의 둘째 아들)을 비롯한 69명의 신도가 순교하였다. (4) 1844년 김대건 신부가 상하이에서 신부가 되어 귀국한 후 신도 수가 급격히 늘었으나 대원군이 권력을 잡은 후 병인 박해가 일어나 1871년까지 약 1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계속 박해를 받던 천주교는 1885년 한·프랑스 수호 조약이 체결되면서 비로소 인정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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