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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조선 후기 서민 계층의 변화 |
| 요약 |
조선 후기 서민 계층의 변화
[신분 제도의 붕괴]
1. 양반 인구 증가 원래 양반이란 관직에 오른 관리를 말하였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되었다. 곡물을 내면 그 대가로 상이나 벼슬을 주는 납속책(공명첩)이 생겨났고, 족보를 위조하거나 양반과 혼인을 하여 양반이 되는 경우도 있어 양반 인구가 크게 늘어났다.
2. 노비 인구 축소 조선 후기에는 양인과 노비를 엄격히 구분하는 신분 제도가 급속히 무너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도망을 간 노비가 많아진 탓도 있지만, 그보다 국가가 군역 및 조세 대상자를 늘리기 위하여 노비를 단계적으로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또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거나 국가에 곡식을 바쳐 양인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1801년 관청에 소속된 노비가 모두 해방된 데 이어 1894년(갑오개혁)에는 사노비까지 모두 해방되었다.
[서민 경제 생활의 변화]
1. 신흥 권력층 등장 화폐 경제가 활성화되고 넓은 땅을 경작하면서 더욱 잘살게 된 농민(부농)과 대상(규모가 큰 장사를 하는 상인)이 돈을 이용하여 양반이 되고, 새로운 권력층을 형성하였다. 반면 권력에서 소외된 양반은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워져서 상민과 다를바 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2. 어려워진 서민 생활 부농이 넓은 땅을 경작하게 되면서 땅이 없는 농민들은 더욱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소작농이 되거나, 일부 지주와 대상들의 고리 대금(이자가 비싼 돈)에 희생되어 산에 불을 내고 밭을 일구는 화전민으로 몰락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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