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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민주화 선언 |
| 요약 |
민주화 선언
[6월 민주 항쟁의 발단]
1.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조사를 받던 중 고문·폭행으로 사망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비정상적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에 대한 불신과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2. 4·13 호헌 조치 재야 세력과 야당은 대표 선거인단을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 선거제 대신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 직접 선거제로 헌법을 고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에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은 정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1987년 4월 13일 모든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4·13 호헌 조치를 단행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3. 이한열 사망 사건 1987년 6월 9일 연세 대학교 정문 앞에서 연세 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더욱 거세졌다.
[6월 민주 항쟁의 전개]
6월 10일 민주정의당 대표 위원인 노태우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날, 국민운동본부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도시에서 ‘박종철 고문 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민주 헌법 쟁취 범 국민 대회’를 개최하여 6월 항쟁에 불을 붙였다. 이후 20여 일 간 전국적으로 약 500만 명이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 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독재에 맞섰다.
[6월 민주화 선언]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는 직접 선거와 관련 국민 투표를 실시할 것과 평화적 정부 이양, 대통령 선거법 개정, 김대중의 사면 복권 등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국회에서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접 선거제 헌법을 의결하였고, 이 개정 헌법은 국민 투표에 의해 확정되었다.
[6월 민주 항쟁의 의의]
6월 민주 항쟁은 힘과 권력을 가진 독재 정권의 야욕을 국민의 힘으로 저지하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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