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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독립운동신문(1910년대) |
| 요약 |
독립운동 신문(1910년대) 2011-10-4
▲<대한광복회>의 활동 대한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항일 비밀결사였다. 1913년 채기중이 경상북도 풍기에서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였는데, 1915년 박상진이 가입한 후 조직을 개편하고 대한광복회라 하였다. 조직은 중앙에 총사령, 부사령, 지휘장, 재무부, 선전부를 두었다. 각도에는 지부장을 두었으며 만주지부도 결성하였다. 주요한 투쟁 내용을 보면 군자금을 모금하고 군관학교를 세우며 무기를 구입하고 일본인에 대한 섬멸전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1917년에는 세금 수송차량을 습격하여 8,700원을 압수하였으며, 경북 칠곡의 부호로서 군자금 모금에 협조하지 않은 장승원과 친일파인 박용하를 사살하였다. 이후 이종국의 밀고로 박상진을 비롯한 37명의 단원들이 체포되어 그 활동이 중지되었다.
▲평양에서 <조선국민회>를 조직하다. 조선국민회는 평양 숭실 학교의 학생들과 크리스트교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평양에서 1917년에 조직한 공화주의 독립단체이다. 장일환이 회장을 맡았으며, 하와이의 대조선국민단 및 간도의 독립운동단체와 연락하면서 군자금 모금과 무기구입을 위해 활동하였으며, 3.1운동 당시 평안도 지방의 만세운동을 주도 하였다.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을 조직하다. 신한 청년당은 1918년 8월 중국의 상하이에서 서병호, 여운형, 김구, 이광수등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강령은 청년터키당의 강령에 준하여 대한독립, 사회개조, 세계대동으로 정하였다. 기관지인 ‘신한청년보’를 간행하여 중국거주 동포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1919년 1월에는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하여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외교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신한청년단의 왕성한 활동은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수립의 밑바탕이 되었다.
▲연해주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다. 3.1운동이 일어나기 1년 전에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 운동가 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는데 이것을 무오독립선언이라고 한다. 여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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