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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역사 속의 인플레이션 |
| 요약 |
역사 속의 인플레이션 ---------------------------------- 기원전 즉 고대사회에도 화폐는 있었다. 그리고 민중들은 화폐에 대해 무지하였고 왕실 즉 제후들은 화폐에 대한 비밀과 침묵이 최상의 정책이라고 생각하였고 공개를 꺼려했다. 화폐는 곧 권력이었으므로 권력자들은 화폐와 그 사용에 대한 국민의 태도가 기존 정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역사상 네 번에 걸친 커다란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로마시대, 프랑스의 혁명기, 미국의 남북전쟁, 그리고 바이마르공화국 초인플레이션시대, 하지만 각 시기마다 똑같은 시나리오가 계속되고 있었다. 단지 장소나 시기 그리고 등장인물의 성격 등에 다소간의 윤색이 있을 뿐 보다 중요한 측면, 즉 인과관계, 경제적 사건의 전개, 또 대단원과 같은 줄거리에 있어서는 놀랄만한 유사성이 있다.
우선 로마의 인플레에 대하여 살펴보자. 로마는 이민족의 침입, 왕실의 부패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플레로 인해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로마후기 카라칼라는 동생을 죽이고 황제에 즉위한 후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통화를 변조한 것이다. 이것은 로마의 장기적 인플레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20데나리만 가지면 로마에서 거의 8개월동안 생활할 수 있었으나 인플레시대에 150데나리는 그전의 3데나리 정도의 가치밖에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물가는 점점 상승했고 새로운 화폐로 불충분해지자 카라칼라의 방식으로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였다. 즉 주화는 점점 작아지고 그 액면가는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물가는 계속 상승했고 주화의 액면가만 올라가는 악순환은 반복되었다. 그 결과 30년도 안 되는 기간동안 기본생계의 주곡가격이 100이상으로 폭등했던 것이다. 4세기 후반 돼지고기 값은 100퍼센트 인상되었고 금값도 800퍼센트 인상되었다. 이와 같은 재정관리들의 경제에 대한 무지는 인플레이션을 영구화 시켰으며 나아가 로마의 분열과 종말을 촉진시킨 것이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도 인플레가 있었다. 프랑스의 혁명지도자들은 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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