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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서양역사매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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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역사매거진(근대 시대) 2011-11-2
신항로 개척에 앞장섰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가장 먼저 번영을 구가하였으나, 17세기 전반기에는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한 네덜란드가 해외 무역에서 현저한 발전을 이룩하고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상업과 금융 중심지로 떠올랐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이후 영국의 모직물 공업 발달, 향해법 등으로 타격을 입고 17세기 후반부터는 프랑스와 영국이 해외 발전의 패권을 놓고 각축전을 벌였다. 17세기 후반기의 프랑스는 루이 14세 시대로 절대주의가 절정에 달해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영국에서는 17세기에 두 번의 혁명이 일어나 절대 왕정이 무너지고 의회 중심의 입헌 정치가 시작되었으며, 18세기 중엽에는 해외 식민지 쟁탈전에서도 프랑스를 누르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삼각 무역이 발달하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배는 유럽의 공산품을 싣고 아프리카로 가서 흑인 노예와 교환한 다음,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신대륙은 흑인 노에를 공급받아 사탕수수와 면화, 담배를 생산하여 유럽으로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제조업자들은 사탕수수와 담배 등의 물품을 정제하거나 완제품으로 만들어 유럽의 다른 시장에 운송 판매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노예무역이 이루어지다.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끌려간 노예는 16세기에 약 90만, 17세기에 275만, 18세기에 400만, 19세기에 700만명으로 총 1465만 명이라고 한다. 이는 도착 노예의 수로, 운송 과정에서 여섯 명 중 5명이 죽었으므 실제로 잡혀간 수는 6,000만명에 이른다. 유럽 상인들은 아프리카의 노예를 사거나 끌고 가 아메리카 대륙에 팔고, 그들이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생산한 사탕수수와 담배, 커피 등을 가져와 유럽에 판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남기기 위해 노예 무역에 뛰어들었다. 노예 무역을 통해 유럽은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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