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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19세기 풍속화 |
| 요약 |
< 19세기 풍속화 19세기 후반 풍속화는 장식성에 그친 경직도류의 병풍 그림이나 호사 취미로 전락한 춘화첩이 주류를 이루면서 더 이상 변력기의 시대 정신과 조응하지 못하였다. 또 이를 계승한 구한말의 풍속화에는 회화성이나 장식성보다 기록적인 성격만 유지되었다. 근대로의 개화 노력이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꺾이면서, 개항 이후 외국인의 조선 풍속에 대한 관심에 따라 그려진 사례를 통해 구한말 풍속화의 주된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독일에 가 있던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은 바로 저간의 사정을 잘 말해 준다. 이와 함께 구한말에 기록적인 풍속화첩을 남긴 화가로는 평양에서 활동한 일재 김윤보가 있다. 이처럼 예술적 풍모보다 기록화적인 성격으로 치우친 구한말의 풍속도들은, 새로움보다 조선 후기 풍속화의 쇠잔한 말기적 양상을 짙게 띠고 있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중세적 양식에 머물러 근대로의 사회 변동에 적응하지 못한, 그리고 이 시기 제국주의 침략에 무력해진 봉건 사회의 문화 수준을 드러낸 결과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풍속화의 맥락은 19세기 말 내지 20세기 초의 근대화 과정에서, 회화 작품으로보다 신문이나 서적 등 인쇄 매체의 삽화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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