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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7세기 동아시아의 정세 |
| 요약 |
7세기 동아시아의 정세
7세기의 동아시아의 정세의 가장 큰 변화는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된 것이다. 당나라의 건국은 동아시아의 정세변화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수에 이어서 당나라도 고구려에 침입을 계속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신라는 당나라와 나당 동맹을 맺으면서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당나라의 수도는 장안이었는데 장안은 당나라의 개방적인 정책에 힘입어서 많은 외국인들로 붐비게 되었다. 당시 100만의 인구를 자랑하던 장안은 인종, 문화, 종교의 경연장과 같았다고 할 수가 있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당나라는 외국인 관리를 채용하는 빈공과를 실시하며 이들 외국인들을 반기게 되었다. 수도 장안에는 로마의 유리와 페르시아의 양탄자 등을 판매하는 시장이 있었고, 서역의 춤과 음악, 음식, 복장, 화장법이 유행하였으며, 이슬람교, 경교, 조로아스터교등 외국의 종교사원들도 즐비하게 되었다. 경교는 서양에서 네스토리우스교라고 불리던 것으로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벌였던 크리스트교의 한 교파로, 중국에서 경교라고 불리게 되었다. 장안은 도로와 거주 구역이 바둑판 모양으로 정비된 계획 도시였다. 두 구역이 시장으로 지정되었으며, 방이라고 불렸던 각 구역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장안에서 발견된 이슬람과 비잔티움의 금화를 통해서 당시의 문화교류의 흔적을 잘 알아볼 수가 있다. 당나라의 발달된 문화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당나라의 한자는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으로 전파기 되었으며 이들 나라의 문자에 영향을 주면서 우리나라의 이두, 일본의 가나문자, 베트남의 쯔놈 문자가 만들어지는데 공헌을 하게 되었다. 당나라의 영향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676년에 삼국의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698년에는 발해가 건국이 되면서 7세기 동아시아의 정세에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다. 또 당의 건국은 일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서 645년에 다이카 개신이 일어나게 되었다. 다이카 개신은 당나라를 다녀온 유학생들을 중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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