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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근대북아메리카의 창조 |
| 요약 |
<<<<근대 북아메리카의 창조. 16세기 내내 1492년 콜롬부스가 "발견"했던 신세계는 유럽의 진출과 식민화의 표적이 되었다. 스페인, 포르투갈은 서인도 이남지역를 분할한 최초의 세력이었다(포르투갈은 오늘날의 브라질을 차지했으며, 스페인은 나머지 거의 전부를 차지하였다). 탐험가인 헤르난도 코르테스는 멕시코에 발판을 구축하여 16세기 초반에 남아메리카를 약탈했다. 16세기 후반에는 스페인은 플로리다에 진출했으며, 네덜란드인과 프랑스인은 그보다 북쪽, 오늘날의 미국과 캐나다의 동부지역에 전진기지를 세웠다.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미국지역에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하게 될 것이지만, 영국인들은 다른 나라들에 뒤이어 북아메리카대륙에 가장 큰 규모로 진출했다. 1497년, 존 캐보트가 처음으로 북아메리카 해안을 탐험했고, 프란시스 드레이크경은 1572년이후 서반구 해안선의 상당부분을 탐사하였다. 그러나 초창기의 영국탐험가들은 신세계 자체보다는 중국으로 가는 무역로를 찾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 또 다른 위대한 보물 탐험가였던 월터 롤리 경은 남아메리카에서 스페인이 그랬듯이 북아메리카에서도 금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랬지만 금을 찾으려던 노력과 1584-1587에 걸쳐 영구적인 식민지를 건설하려던 계획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대서양 연안의 좁은 지역을 영국영토라고 선언하고, 그의 친구이자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를 기념하여 버지니아라고 명명하였다. 1607년 영국인들은 마침내 세계 최대의 영어 사용국으로 발전할 씨를 심었다. 존 스미스 선장은 버지니아 지역의 제임스 타운(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따서)에 정착지를 세웠다. 이 식민지는 여러번 거의 실패할 뻔했지만, 식민지인들은 계속 버티어 나갔다. 1619년에는 제임스 타운 주민들이 북아메리카 최초의 대의체(代議體)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후일 일반화된 정부 형태의 선구였다. 1620년에는 스스로를 순례자(Pilgrims)라고 부르던 일단의 영국인들이 오늘날의 메사추세츠 지역의 플리머스에 또 다른 정착지를 세웠다.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정치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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