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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일본인의역사인식 |
| 요약 |
<<<<일본인의 역사 인식 태평양 전쟁은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항복하고, 9월 2일 미주리 함상에서 항복 문서에 조인함으로써 전쟁이 끝났지만, 반세기가 지는 오늘날 일본에서는 매년 8월 15일이 되면 과거사를 반성하거나 이를 정당화하려는 엇갈린 분위기가 여전하다. 도조 히테키 등 전범의 위패가 놓여있는 야스쿠니 신사에는 13명의 각료와 여야 의원 54명, 일반인들의 참배가 줄을 이어 일본의 '이중적 역사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종 단체의 집회가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과거사를 정당화하려는 우익 단체들의 집회가 확대되어 있다. 1998년 8월 15일 당시 오붙이 리는 도쿄에서 열린 정부 주최 전몰자 추모식에서 " 태평양 전쟁이 일본은 물론 아시아 이웃나라에도 많은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 며 "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깊은 반성과 애도의 뜻을 표한다. " 고 말했다. 그의 식사는 그 해 가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중국의 장쩌민 국가 주석의 일본 방문을 앞둔 시점이어서 가해자의 책임 부분에 관한 언급이 주목되었으나 진정한 참회와 책임의 회피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키히토 왕도 이날 " 전화로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추도의 뜻을 표하며 세계 평화와 일본의 발전을 기원한다. " 고 말했을 뿐 책임과 반성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2000년 8월에 들어서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 희생자에 대한 추모행사가 잇달았다. 일본인이 최초로 원폭실험의 대상이 된 데에 대해 슬퍼하는 일본인들의 연례 행사이다.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각료를 비롯한 참배 행렬이 줄을 이었다. 총리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현직 각료 10명과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 군복차림의 퇴역 군인, 우익 단체 회원, 지방 참배객 등으로 붐볐다. 일본이 당한 원폭피해만 비통할 뿐이지 일본의 군국주의가 저지른 전쟁에 의해 아시아 2000만명이 죽은 사실에 대한 책임이나 상대국이 입은 피해는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 조선 병합은 그 쪽에도 이로운 것이었다.' 거나 ' 난징학살을 없었다. ' 는 우격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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