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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신라의 불교 수용 |
| 요약 |
신라의 불교 수용
신라의 불교수용은 순탄하지 않았다. 신라가 고구려의 세력을 배경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눌지마립간 때에 고구려로부터 묵호자(墨胡子)가 신라의 서북경 지방인 일선군 (一善郡:善山)에 들어와 모례(毛禮)의 집에 기숙하면서 불법(佛法)을 전하였으며, 모례는 신라인으로서 최초의 신도가 되었다. 그때 중국의 사신이 향(香)을 가지고 왔으므로 묵호자가 나아가 분향예불(焚香禮佛)하는 법을 가르치고 공주의 병을 완쾌시킴으로써 신라왕실에서도 불교를 알게되었으나 별로 신도를 얻지 못하였다. 그뒤 소지마립간 때에 고구려에서 아도(阿道)가 들어와서 불법을 전도한 뒤로 신봉하는 자가 늘어났다. 신라에 왔던 이 아도는 고구려에 왔던 중국승 아도와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며, 아도라는 이름은 머리가 없는 자라는 뜻으로 삭발승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보고있다. 그뒤에도 신라왕실은 불교공인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씨족중심 귀족들의 끊임없는 반대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씨족적 기반을 억누르고 중앙집권적 국가를 확립하고자 했던 왕실파(王室波)들은 법흥왕을 중심으로 불교를 새 지배체제의 구축을 위한 정신적 지주로 삼아서, 왕법(王法)과 불법(佛法)을 동일시하고 부처님의 위력을 왕의 위력으로 대치하여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570년(법흥왕 7)에 율령(律令)을 반포하여 국가조직에 관한 정비를 일단락지은 법흥왕은 527년에 이차돈(異次頓)의 순교(殉敎)를 계기로 배불파(排佛派)를 제압하고 불교국교를 선포하였으며, 529년에는 영을 내려 살생을 금하도록 하였다. 이차돈이 순교한 지 7년 뒤에는 그가 절을 만들고자 했던 천경림(天鏡林)에 신라 최초의 절인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하였고, 법흥왕은 왕위를 진흥왕에게 물려주고 스스로 승려가 되어 법공(法空)이라고 불렀다. 이때의 불교는 ‘선행수복(善行受福)의 불교’ ‘인과응보적 권선징악의 불교’였으며 고구려와 같이 토속신앙과 자연스럽게 혼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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