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고려 귀족사회의 변천 |
| 요약 |
고려 귀족사회의 변천
<14세기 후반에 들어와 몽고족의 원나라가 쇠퇴하면서 중국 각지에서는 한족의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고려의 공민왕은 이 때를 이용하여 친원 세력인 기철 등을 숙청하고 내정 개혁을 단행하였다. 즉 왕의 인사권을 침해하던 정방(政房)과 원이 고려 내정에 간섭하던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으며, 쌍성총관부를 공략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 그리고 인당, 최영 등으로 하여금 요동 지방을 공략하게 하였으며 고려의 고유한 관제를 복구하는 한편 몽고의 풍속을 몰아내는 등 반원 자주 정책을 추진하였다. 반원 정책을 추진하는 공민왕을 몰아내기 위하여 원이 고려로 침입해 왔으나, 최영이 이를 격파하여 몰아냈고(1364), 또 원의 장수 나하추가 동북 지방으로 침입해 오자 이성계가 함흥 평야에서 이를 격퇴시켰다. 한편 공민왕은 지용수와 이성계로 하여금 압록강을 건너 요동 지방을 점령하게 하고 이 땅이 우리의 땅을 선포하였으나, 군대를 계속 주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뒤에 명나라가 이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고구려 땅의 수복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당시 국내 세력을 좌우하는 권문 세족들은 비록 원의 영향력은 약화되었지만 많은 토지를 차지하고 불법을 자행하여, 위로는 국력을 좀먹고 아래로는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며 공민왕의 개혁을 방해하고 있는 데다가 원을 비록한 주위의 여러 세력의 압력으로 공민왕의 개혁을 많은 파란을 겪게 되었다. 그리하여 공민왕의 개혁은 부분적으로 성과를 거두었으나, 완전히 이를 달성하지는 못하였고,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공민왕의 개혁 정치를 뒷받침하던 신진 사대부 세력은 꾸준히 개혁을 추구하였고, 이들 중 일부가 신흥 무인 세력과 손잡고 조선 왕조를 건국하게 된다.(1392) >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