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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박세당의 탈성리학 사상 |
| 요약 |
박세당의 탈성리학 사상 17세기에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명나라가 망하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맞물려 성리학이 토착화하고 예학이 생활화되면서 주자학 일변도의 사회로 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종래의 성리학을 일신하여 더 넓은 시야와 자유로운 입장과 실제적인 태도에서 고전을 재검토하려던 이른바 탈성리학(脫性理學)의 학풍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고대의 유학, 특히 한(漢)나라 때의 유학을 빌어 통치이념을 수정하려는 윤휴와 같은 남인(南人) 계통의 시도와, 명나라의 양명학을 채용하려는 최명길·장유 등의 시도, 노장사상을 도입하여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려는 박세당의 시도가 있었다. 박세당의 탈성리학적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서가 대학·중용·논어·상서·시경 등의 해설서인 사변록, 그리고 도가에 대한 연구서인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과 남화경주해산보(南華經註解刪補)이다. 특히 사변록은 주자의 경의(經義)에 반기를 들고 자기 식의 해석을 했기 때문에 당시 정계·학계에 큰 물의를 일으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하였다. 아울러 농서인 색경(穡經)도 저술하였다. 색경은 중국의 농상집요를 바탕으로 우리농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농학의 체계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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