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성리학적 문화 |
| 요약 |
성리학적 문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한 조선은 성리학적 유교 윤리를 보급, 정착시키기 위해 도덕과 의례의 기본서인 ‘소학’, 가정에서 지켜야할 예법을 소개한 주자가례, 그리고 ‘이륜행실도’ ‘동몽수지’등을 보급하게 되었다. 성리학적 유교 윤리가 조선 사회에 정착해 나가면서 가족과 친족의 혈통관계를 밝혀주는 족보의 편찬이 유행하게 되었다. 족보를 편찬 함으로써 가족과 종족 상호간의 상장제례 의식을 정립하고, 유교주의적 가족 제도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으나 지나친 형식주의와 사림간의 당쟁의 구실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족보의 내용 족보는 부계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도표식으로 나타낸 한 종족의 계보로, 성리학적 유교 윤리가 정착하고 가문의 혈통을 중시하는 풍조가 유행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조상을 존경하고 종족의 단결을 꾀하며 후손으로 하여금 촌수의 멈과 가까움에 관계치 않고 화목하게 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양반층에 일반화된 사당 성리학을 사실상 국교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사당의 시행이 강요되었다. 조선 초기에 사당을 설치하지 않은 사대부가 문책을 당하기도 했는데, 선조 이후부터는 사대부 양반층에 일반화 되게 되었다.
주자가 저술한 주자가례 주자가 유가의 예법의장에 관하여 서술한 책으로, ‘문공가례’라고도 한다. 고려 말 신진 사대부들은 성리학과 함께 도입된 ‘주자가례’를 유교 의례의 측면에서 보급시키고자 하였다. ‘주자가례’는 관, 혼, 상, 제에 관한 예제로서,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성리학이 국가 정교의 기본 강령으로 확립되면서 시행 강요되어 처음에는 왕가와 조정 중신에서부터 사대부 집안으로, 다시 일반 서민에까지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제례에서는 가묘제, 상례에서는 3년상, 혼례에서는 친영 등을 중심으로 시행할 것을 권장하였다. 16세기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한 사림은 성리학적 유교 윤리를 정착시키고자 ‘주자가례’를 장려하였고, 이 때문에 민간에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이러한 예학의 발달은 예와 효를 숭상하는 우리나라의 가족 제도를 발달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