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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원나라가 고려를 지배한 형태 |
| 요약 |
원나라가 고려를 지배한 형태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았던 100여년 동안 고려와 원은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였다. 몽고의 풍속들이 고려에 많이 전래가 되엇 고려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반면에 고려의 풍속도 원나라에 많이 전래가 되었는데 이것을 고려양이라고 한다. 고려양은 원에 진출한 고려인들에 의해서 소개되었다. 특히, 궁중에 소속된 급사나 시녀들로 인해 고려 방식이 의복, 음식, 기물 등이 유행하였다. 원나라의 간섭을 받는 시기동안에 고려의 피해도 컸는데 원은 다수의 공녀와 내시를 요구하였다. 이들은 주로 원의 궁궐에서 생활하다 보니 정치적으로 성장하여 오히려 고려에 피해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고려가 겪은 재정적인 부담도 커졌다. 오가는 사신이 많아 지면서 이들에 대한 경비가 막대하였다. 특히, 국왕이 원에서 생활하거나 오고 가는 일이 많아 졌는데, 그때마다 엄청난 물자가 들었다. 몽고가 고려에서 가져간 물품을 보면 금, 은, 저포, 자기, 해동청(매)등을 마구 가져갔다. 원은 고려에게 여성을 요구하였는데, 이때 보낸 여성들을 ‘공녀’라고 한다. 끌려간 공녀들은 궁녀가 되거나 높은 관리의 시중을 드는 시녀가 되었다. 공녀로 끌려간 고려 여인 중에서 황후에 오른 인물이 있었는데, 순제의 황후인 기황후 였다.
몽고의 간접통치 몽고는 심양에 심양왕을 봉하여 고려의 투항 민을 다스리게 하였다. 충선왕의 경우 고려 국왕과 심양왕이라는 두 직책이 있었는데,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국왕자리는 세자에게 물려주고 심양왕은 조카에게 물려주었다. 이것은 후에 심양왕이 국왕 자리를 노리는 불씨가 되었으며 원은 심양왕과 고려왕을 대립시켜 고려의 세력을 견제하기도 하였다. 원 간섭기에 원에 결탁한 새로운 계층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을 권문세족이라고 한다. 권문세족은 여러 계기로 형성되었는데, 몽골어를 익한 역관이 권문세족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매를 사육하여 바치는 응방을 통해 진출한 세력들도 있었다. 그 외에 원의 공주를 따라 들어온 사속인 출신, 원의 환관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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