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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이민 현황 |
| 요약 |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이민 현황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간도와 연해주 지방으로 많은 동포가 이주하면서 우리 민족의 해외 이주가 시작되었다. 그 후 20세기 초에는 태평양을 건너 미주로 이민을 가는 동포들도 생겨나면서 우리민족의 해외이주가 활기를 띄게 되었다.
두만강 북쪽의 간도 지역으로 이주가 이루어지다. 두만강 북쪽에 위치한 간도 일대는 청 왕조의 발상지로, 청나라는 이 지역을 신성하게 여겨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이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청나라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반에 함경도와 평안도 등지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점차 많은 한인이 간도 지방으로 이주하여 황무지를 개간하게 되었다. 농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간도 일대에 벼농사가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이다. 하지만 청은 우리 민족의 토지 소류를 금지하였기 때문에 황무지를 개간하여 논밭을 만들었어도 그 땅에서 소작료를 지불하며 농사를 지어야 했고, 여러 가지 세금을 내야만 했다.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우리 동포 1860년, 러시아가 청나라와 영국, 프랑스 간의 강화 협상을 중재한 대가로 연해주를 차지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새 영토를 개척하기 뒤해 한인의 입국을 허용하고 토지를 제공 하는 등 편의를 제공했기 때문에 인근의 함경도와 평안도 지역에 거주하는 가난한 농민들이 많이 이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1880년대에 러시아가 유럽 인들의 이민을 적극 추진하면서 한인들에게도 귀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 국적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많은 세금을 내야 하였고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지만, 국적을 얻는 절차 자체가 매우 까다로웠다. 이러한 어려움과 악 조건 하에서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한인들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이후 연해주지역의 우리 동포들은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20세기 초 하와이, 미주지역으로의 이주가 이루어지다.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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