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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역사 신문 |
| 요약 |
고려역사 신문 2011-12-27
고려의 정치조직은 어떻게 정비 되었는가 고려는 당의 3성 6부제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당의 제도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고려의 실정에 맞게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의 2성 6부제로 운영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송나라의 영향을 받은 고려의 정치기구로는 중추원과 삼사가 있었으며, 고려의 독자적인 정치 기구로는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이 있었다. 도병마사는 고려의 정치가 귀족중심으로 이루어 졌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방통치의 방법인 사심관 제도 신라가 망한후 경순왕인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선임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고려는 사심관 제도를 실시하였다. 고려시대의 사심관 제도는 지방에 연고가 있는 고관에게 자기의 고장을 다스리도록 임명한 것으로, 태조 18년에 신라 경순왕을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한 것에서 시작이 된다. 당시 고려는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였던 때이므로 사심관은 기인 제도와 함께 지방 세력에 대한 중앙 통제의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국가 통치 체제가 정비되면서 사심관의 성격도 변하여 이것이 출세가 통로가 되었다. 즉 사심관이 지방 통제의 권한을 가졌고 관료로서의 정치적 경제적 기반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력한 관리들은 서로 연고지의 사심관을 겸임하려고 경쟁하였다. 사심관의 증가는 여러 가지 폐단을 가져왔다. 국가가 안정되어 있을때는 이들을 통제할 수 있었으나, 중앙의 행정력이 약해지자 공전을 점유하고 민호와 노비를 가로채는 등 원래의 목적과는 동떨어진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폐단으로 사심관 제도는 1318년에 완전히 폐지가 되었다.
고려의 과거제도의 내용 고려 시대에는 법제적으로 양인 이상은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으나 실제로 제술과나 명경과에는 주로 귀족과 향리의 자제들이 응시하였고, 일반 농민인 백정들은 주로 잡과에 응시하였다. 과거에 합격한 사람은 자신을 뽑아 준 시험관을 좌주라고 부르며 평생 부자와 같은 관계를 유지하였고, 급제자들끼리도 동문 관계를 맺어 동창회와 비슷한 모임을 갖고 형제처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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