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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통일신라 말엽의 혼란 |
| 요약 |
통일신라 말엽의 혼란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던 통일 신라는 8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혼란의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바로 혜공왕 암살 사건이었다.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던 혜공왕이 귀족의 반란으로 살해당한 후 신라는 150년 동안 20명의 왕이 바뀔 만큼 혼란스러웠다. 9세기 전반에 웅천 도독 김헌창의 반란은 신라 말기 왕권의 허약함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 세력도 왕위 쟁탈전에 개입하여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 정도로 정치질서가 혼란하였다. 하지만 신라 왕실은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쇠퇴해 갔다. 이 과정에서 왕권과 결탁했던 6두품 세력들은 골품제의 제약으로 점차 중앙에서 밀려났다.
각지에서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다. 귀족과 사원들의 대토지 소유가 증가하는 가운데 왕실과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 풍조는 9세기말 진성 여왕 때 최고조에 달하였다. 국가 재정이 파탄에 이르자 농민들에 대한 조세 수취는 강압적으로 변해갔고, 흉년과 자연재해는 농민들의 생활을 더욱 비참한 상태로 만들었다. 가혹한 수탈을 이기지 못한 농민들은 토지를 잃고 노비가 되거나 고향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초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는 반란을 일으켜서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기도 하였다. 상주에서 일어난 원종과 애노의 봉기는 대표적인 농민반란이었다. 각 지방의 초적들은 세력을 결집하여 군사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이들은 재물이 많은 사찰이나 부유한 집안을 약탈하면서 지방의 유력자로 성장하여 호족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지에서 호족세력들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방에 대한 신라 왕실의 통제력은 유명무실해지고 경주와 인근 지역으로 한정되었다. 삼국사기에는 헌덕왕, 진성여왕, 효공왕 때에 농민봉기가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진성여왕 때에는 붉은 바지를 입은 도적이 경주 서남쪽에서 일어나 주,현을 공격하고 모량리까지 이르러 민가를 약탈했다는 기록이 있다. 농민봉기는 9세기 초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10세기초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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