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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조선의 사건들 |
| 요약 |
근대 조선의 사건들
병인양요 이전부터 조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는 선교사가 처형된 일을 구실로 7척의 군함을 보내 우리 나라를 침략하였다. 강화도에 도착한 프랑스군은 선전 포고도 없이 공격을 시작하여 강화읍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정족산성에서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군의 공격을 받아 6명이 사살되고 30여 명이 부상당하는 참패를 당하자 사기가 크게 떨어져 물러가고 말았다.
그런데 프랑스군은 물러가면서 강화읍에 불을 지르고, 강화읍에 보관된 외규장각 도서와 금은 덩어리 등 귀중한 문화 유산과 재물을 약탈하였다. 병인양요를 계기로 서양 세력의 통상 수교 요구를 거부하는 흥선 대원군의 정책이 더욱 굳어졌으며,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도 심해졌다.
오페르트 도굴사건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두 차례나 조선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자, 다시 무장한 선원들을 데리고 덕산군(충청 남도 예산군) 관아를 습격하고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밤늦게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도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1868). 이 사건으로 조선에서는 서양인들은 모두 야만인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흥선 대원군도 서양 세력에 대해 더욱 강경한 태도를 갖게 되었다.
신미양요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바로 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 호가 통상을 요구하며 소란을 피우다가 평양 군민에 의해 침몰한 사건이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미국은 함대를 파견하여 강화도를 침공하였다. 그러나 광성보에서 어재연 등이 이끄는 조선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 후, 조선을 개항시키려는 목적을 쉽게 이루지 못할 것을 깨닫고 물러가고 말았다.
신미양요 이후 흥선 대원군은 서양과의 통상 수교를 거부하는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곳곳에 척화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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