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동학 |
| 요약 |
동학
탐관 오리의 봉건적 수탈과 외세의 경제 침탈로 인해 농민들의 생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운데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내세우고 외세 배격을 주장하는 동학(東學)이 일어났다.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던 동학은, 정부가 교조인 최제우를 처형하는 등 탄압을 가하면서 한때 교세가 위축되었다.
그러나 1870년대 후반부터 조직을 정비하면서 포교 활동을 활발히 펼쳐 지배층의 착취와 일본 상인들의 침투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농민들 사이에 널리 퍼졌고, 1880년대 이후에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으로 교세가 확대되어 갔다.
동학의 교세가 커지자, 동학 교도들은 포교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교조 신원 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이 운동은 일반 농민들이 대거 참여한 보은 집회를 거치면서 종교적 요구 외에도 탐관 오리 숙청, 일본과 서양 세력을 몰아 낼 것을 주장하는 등 정치 운동으로 바뀌어 갔다.
동학농민운동 1894년 3월, 동학 농민군의 봉기를 촉구하는 사발 통문이 돌려진 지 겨우 10여 일 만에 고부 주변 지역에서 8000여 명에 이르는 동학 농민군이 모였다.
2차 봉기 때인 10월에는 27개 지역에서 35명의 지휘자들이 이끄는 10여만 명에 이르는 동학 농민군이 모여들었다.
이와 같이 동학 농민 운동은 우리 나라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농민 운동이었다. 그 이전에도 지방관의 수탈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농민 봉기가 자주 일어났지만, 이렇게 넓은 지역에서 농민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적은 없었다.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