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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광복 후 국가수립 과정 |
| 요약 |
광복 후 국가수립 과정
8·15 광복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드디어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되었다. 광복은 연합국의 승리로 얻어진 것이었지만, 우리 민족이 끈질기게 투쟁한 대가이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이미 광복 이전에 민주 공화국 수립을 규정한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제정, 공포하여 새로운 국가 건설을 준비하였다. 중국 화북 지방의 조선 독립 동맹도 민주 공화국 건설을 위한 원칙을 발 표하였다.
광복 후 국내에서는 여운형이 조선 건국 동맹을 기반으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송진우 등은 민족주의 진영을 표방하는 정 당을 조직하였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사회주의 세력들도 정치 활동을 전개하였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 모인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무 장관들은 한국에 임시 민주 정부 수립과 이의 준비를 위한 미·소 공동 위원회의 설치, 미·영·소·중 4개국에 의한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 실시 등을 결정하였다.
우리 민족의 대다수는 신탁 통치를 민족의 자주권을 부정하는 것이 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김구를 중심으로 한 우익 진영은 대대적인 신탁 통치 반대 운동에 나섰다. 좌익 진영도 처음에는 신탁 통치를 반 대하였으나, 후에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을 총체적으로 지지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통일정부 수립의 노력
좌우의 대립 속에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미·소 공동 위원회가 서울에서 열렸다(1946).
이때 소련은 모스크바 회의의 결정을 지지하는 정당·사회단체만 회담에 참여시키자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참가를 희망하는 모든 단체를 포함시키자고 하였다. 합의에 실패한 채 휴회되었던 미·소 공동 위원회는 이듬해에 다시개최되었으나,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이 깊어지면서 결국 결렬되고말았다.
남북의 갈등과 통일 정부 수립 노력 미·소 공동 위원회의 결렬 이후 미국은 한국 문제를 국제 연합에 넘겼다. 국제 연합은 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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