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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 무신정권 시기 |
| 요약 |
고려 무신정권 시기
무신들의 권력다툼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하자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던 관리들은 군사를 일으켜 무신 정권에 대항하였다. 또한, 귀족들과가까웠던 교종 계통의 승려들도 무신들을 공격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들은 곧 무신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러한 반발을 누른 다음에도 무신 정권은 안정되지 못하였다. 무신들은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무신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치열한 권력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많은 사병을 거느리고 있던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되었다.
최충헌은 권력을 잡자마자 당시 정치·사회·경제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최충헌의 개혁은 최씨 정권을유지하는 데 급급하여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씨 정권은몰락한 문벌 귀족의 토지를 독차지하거나 농민들의 땅을 빼앗아 전국곳곳에 농장을 만들었다.
또한, 사병을 양성하여 권력 유지에 치중하였으며, 국가의 중요 정책까지도 좌우하였다. 최충헌이 죽은 후에도 권력은 그의 아들인 최우에게 넘겨졌으며, 최씨 정권은 모두 4대 60여 년간지속되었다.
하층민들의 봉기
무신 정권의 등장으로 문벌 귀족 중심의 신분 질서가 흔들리면서 사회가 혼란해지고 하층민들의 저항이 각지에서 나타났다.
당시에 농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과중한 세금에 있었다. 세금을 내지못한 농민들은 유민이 되거나 도적이 되기도 하였다.
결국 농민들은 이러한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공주명학소의 망이·망소이의 난, 경주를 중심으로 한 김사미와 효심의 난이 대표적이다.
노비들도 신분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각지에서 신분해방을 부르짖으며 저항 운동을 일으켰다. 특히 만적은 노비들을 규합하여 신분 해방을 목적으로 봉기를 꾸미기도 하였다.
이러한 하층민들의 저항은 실패로 끝났지만, 고려 말에 향·소·부곡민 출신이 재상이나 장군 등 높은 벼슬에 오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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