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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독립운동가 나태섭 |
| 요약 |
<독립운동가 나태섭 나태섭은 1901년 황해도 안악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중동학교 재학 중 3.1만세운동에 참여 후 교육을 통한 구국활동에 뜻을 품게 된 선생은 이듬해 졸업 후 안악군 봉삼학교 교사로 재직하여 인재 양성에 진력을 다하는 한편 독립운동 자금 모금운동과 더불어 동지 포섭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23년 활동이 탄로나 원산으로 피신하였으나 더 이상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게 되자 망명을 결심하게 되었다. 1927년 5월 중국 상해로 망명한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변 독립운동 단체와 관계를 맺고 1934년 2월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특별반에 입교하여 독립운동 간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후 1934년 8월 남경의 중앙육군군관학교 10기생으로 입학하게 되었고, 재학 중 1934년 12월 한국특무대독립군 제1대장으로 선임되었다. 1936년 6월 중앙육군군관학교 10기생 보병과 졸업 후,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황해도 지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보궐 선출된 선생은 같은 해 7월 한국국민당 청년단의 단장으로 선출되어 임시정부 주변의 각 독립운동 단체의 단원들에 대한 보호 및 대일정보 수집, 동지 규합, 인쇄물 등 선전활동, 친일분자 및 일본인 정보원 처단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임시정부는 전시체제에 대한 대비와 보다 적극적인 군사활동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임시정부의 군사정책을 전담하기 위한 기구로 군사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선생은 군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군사활동에 관한 종합적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군사특파단의 일원으로 최전선인 서안에 파견되어 초모활동을 전개하는 등 광복군 창설의 실질적 준비 작업을 전개하였다. 이후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및 서안총사령부 부관으로 활동한 선생은 1944년 군무부 산하의 군사학편찬위원회 간사로 임명되어 한국광복군의 각종 군사학서적을 편찬하고, 군사법규를 기초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군사위원회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제정된 예속적인 내용의 ‘한국광복군행동9개준승’을 취소하고 1945년 4월 ‘원조한국광복군판법’을 마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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