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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사회의 동요 |
| 요약 |
고려 사회의 동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고려의 대표적인 문벌 귀족 경원이씨 가문은 왕실과 거듭된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가장 유력한 외척 가문이 되었다. 특히 이자겸은 딸들을 예종과 인종의 왕비로 만들어 최고의 권력자로 행세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인종이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자, 도리어이자겸은 난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궁궐이 불타는 등 위기에 처했지만, 이자겸의 난은 곧 진압되었다. 이러한 사회 불안 속에 묘청 등 서경의 정치 세력은 인종에게‘고려를 황제국이라 칭하고, 독자의 연호를 사용하며,금을 정벌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리고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개경의 기운은 쇠퇴하고 서경의 기운은 왕성하다고 주장하면서 서경으로 수도를 옮길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맞서 개경의 정치 세력이 서경 천도에 반대하자, 묘청 등은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 의하여 진압되었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중앙 지배층 내부의 분열과 문벌 귀족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들이었다.
무신정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 진압된 후에도문신 중심의 정치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또한, 군사 지휘권까지도 문신들이 독점하였다. 이 때문에 무신의 불만이 날로 커졌다. 게다가 각종잡역과 차별 대우에 하층 군인들의 불만도 심해졌다.
이에 의종이 문무 간의 균형을 꾀하는 개혁 정치를 추진하였지만 문신들의 강한 반발로 곧 중단되었다. 국왕은 더 이상 문무 간의 대립을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일부 문신들이 무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문신과 무신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은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 행차했을 때를 이용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무신들은 많은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권력을 장악하였다.
무신정변은 대부분 농민 출신인 군인들의 협력으로 성공하였다. 당시 군인들은 문벌 귀족의 횡포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신정변에 적극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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