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엄마를 부탁해)
처음에 책 제목을 듣고, 나름대로 심각한 일곱 살배기 얼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풋’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아마 저도 언젠가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줄 때가 올 겁니다.
그때 저도 어머니께서 가지고 계시는 애환’을 담고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자식들에게 모든 걸 바치고 빈껍데기로 남아버린 한 어머니 이야기가 자식들이 제 몸을 갉아먹고 자라게 한 어느 거미와 겹쳐집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대개 눈시울을 붉게 하는 온갖 말들을 쏟아내는데, <엄마를 부탁해>는 ‘너’라는 2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 그, 그녀’로 책을 보는 데 익숙해서 이 책을 읽기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엄마를 부탁해>에서 더 깊은 슬픔을 자아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죽은 자식을 품에 안고 그저 묵묵히 발을 내딛던 체로키 여인처럼 말입니다.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게 마치 매화 향기처럼 그윽한 작풍이 여기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쉽게 지나치는 걸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가까이에 있는 사물에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듯, 이야기라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잘 넘어가서(?) 이리저리 엉뚱한 데로 빠져서 좀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역대 수학능력시험에 오르지 못했던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나오는 ‘엄마’는 오늘날 우리 머릿속에서 없어져 가는 ‘옛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걸 묵묵히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추운 겨울날에도 제사에 쓸 홍어 비늘을 벗기느라 손이 얼어 터지는 걸 보다 못한 엄마는 홍어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제사상에 올리고 ‘껍질을 벗기건 안 벗기건 홍어는 홍어다’라고 어른들 앞에서 서슴없이 말합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하나밖에 없는 딸을 가르칠 수 없다고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운 남편에게 불같이 화내며 발 벗고 나서는 ‘엄마’였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렇게, 나쁜 건 버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 답이 ‘옛 것’에 있다는 걸 <엄마를 부탁해>에서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옥상에 핀 민들레꽃’에서처럼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현실, 도시 사람들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책 수십 권을 쓰는 사람 어머니가 까막눈이라니, 머리 아픈 엄마가 부르지 말랬다고 구급차를 안 부르는 딸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거기다 한 술 더 떠 아픈 사람을 방에 혼자 남겨놓고 잠을 잘 수 있다니, 진돗개 때문에 펄펄 뛰었던 걸 기억하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는지.............................
얼마 전에 막 들어온 전철에 급하게 올라 탄 적이 있었습니다.
전철에 발을 들여놓으며 어디로 가는 건지 물어보았는데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이 닫히고서야 누군가가 작게 알려주었습니다.
잘못 탔는데 참 빨리도 알려주더군요.
그 때 저는 <엄마를 부탁해>와 <옥상에 핀 민들레꽃>에서만 볼 수 있었던 어른들을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게 바로, 머리는 알고 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제 모습이 아닐까요?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어머니가 사라진 이야기에서 나왔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윤동주 시인이 쓴 <길>에 나오는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에 빠진 제 자신을 봅니다. |